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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걷기/짜투리(골목·돌담)

성혈, 그 이야기를 찾아가는 걷기

by 강가딩 2013. 8. 19.


매우 색다른,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첨 시도되는,

성혈을 찾아 가는 걷기에 운좋게도 동참하는 기회를 가졌다.

 

성혈,

일명 바위구멍은 마을 입구, 마을 뒷산, 산성 등 우리 생활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리고 그 누구도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성혈은 개인의 기원, 공동체의 의식,더 나아가 국가의 이상과도 연결되는 등

매우 깊고 광범위한 뜻을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임에 분명하다.

 

성혈 그 이야기를 따라 걷기를 시도(?)하고 있는 느낌표님의 성혈도보를 따라 나섰다....

 

※ 이 블로그에서 소개된 내용과 사진의 일부는 성혈 걷기를 주관하는 느낌표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둠

 

▲ 코스: 동신고~비룡동 줄골 성혈~ 비름들 성혈~신선봉 성혈~고용골성혈~구고속도로~가양 비래공원<점심>

           ~가양동 두겁바위 성혈~(자동차 이동)~대동 연애바위 성혈

▲거리/시간: 약 14km(택시 이동 거리 포함), 약 6시간 30분(점심 등 포함)

▲ 언제, 누구와:  2013년 8월 17(토), 인도행 성혈 찾기 걷기 팀들

 




가양동 두겁바위 성혈

 


하천이 복개되고, 그 위로 길이 나고, 또 도로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자리를 내주고, 치워지고,

종래에는 부셔져 도로를 덮는 돌로 쓰였을 그 성혈,

가양동 두겁바위 성혈....

 

정치와 역사를 잘 몰라도 조상을 섬기고 동네를 사랑했던 어르신 몇명,

그 民草들이 지켜냈다....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이 곳에서 두겁바위 거리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매일 두겁바위에 술이나 물을 또 놓고 마을의 안녕을 빈다고 하네요

 


오늘 가보니 그나마의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아

막걸리 하나와 황태 한마리 사서는,

우리 조상님들이 했던 정성에 조그마한 성의를 더해 본다

 

느낌표님의 성혈 걷기는 오늘이 세번째,

인도행 공지로는 첫 도보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신샘님이 지둘 피날레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가자고 한다....

 

오늘 걷기의 출발지인 줄골 입구에 있는 돌장승

오늘 걷기에 동참한 돌까마귀 대청호 오백리길 카페지기가 지하대장군을 가리켜

대전을 대표하는 미인 미스 진이라고 흥을 띄운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몇번 보았는데 처음 본 것럼 생소하다

 

오늘 성혈 찾아가기에는

성혈의 대가인신 '가보자 보문산님' 해설을 맡아주기로 하셨단다....

 

줄골을 지나가는 시내버스

(동신고 근처이므로, 나중에 대청호를 오갈 때 많은 도움이 될 듯...)

 

비룡동 줄골 성혈

 

성혈이 이렇게 생겼다

첨으로 자세히 보았다.

 

이 곳에는 총 8개의 성혈이 있었고,

마을 길을 내면서 성혈이 새겨진 돌을 잘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혈이 있는 바위 근처에 연자방아가 있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마을의 중심지이었다.

어머니가 방아를 찧고 있거나 방앗간에 가 있는 동안 어린이들은 이 곳이 놀이터가 되기도 했죠...

실제 이 바위 옆에 사는 동네어르신은 어렸을 적 봉숭아을 성혈에 넣어 찧고 놀았다고 한다(가보자님의 설명)

 

비룡동 줄골 마을 선돌

이 앞을 많이도 지나쳤을 것이지만 한번도 선돌이 잇었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입석(立石 menhir)이라고 하며, 고인돌과 더불어 대표적인 큰돌문화[巨石文化]를 나타냄

고인돌에 비교하여 볼 때 우리나라에는 많이 분포되어 있지 않는데,

이는 선돌 자체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조사가 활발하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고,

한편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그 문화전승이 파괴·단절되면서 없어진 경우가 많아서이다.....(이상 다음 백과사전)

 

송석당과 용연바위 위에 각 1개씩 성혈이 있는

비룡동 비름들 용현성혈

 


 

자세히 봐 볼까요

 

완전 성배찾는 고고학자처럼 열씸인 신샘님..

평소와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사실 도로 개통은 마을 입장에서 엄청난 변화이고 발전의 상징일 것이다

 

대문으로 사용되는 바위 위에도 두개의 성혈이 있다....

어떻게 저곳에 있는 성혈까지 발견했을까?

 

집주인의 양해를 구해 대문으로 오른다...

성혈을 대문으로, 성혈이 지켜주는 이 집안은 우환이 없고 번창했을까?

아니면 매일 그 희망과 미래를 빌어 왔을까?

 

다음에 갈 곳은 신성봉

신성봉은 생소한데 신선바위는 수차례 올랐다

 

나의 주의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선바위로 들어간다

 

같이온 도보꾼들이 저 틈바구니를 지날 때도 난 통과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데 돌까 대장님이 꼭 지나가보란다....

 

이런 글자와


 

여기가 신선들이 살았던 신선암임을 새겨놓았다

 

대청호반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조망터,,,

토끼봉 너머로 꽃님이 반도, 그리고 백골산성도 보이고

 

주산동 고용골

호박덩쿨로 감춰져 있는 바위를 드러내자 고용골이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이 바위도 집을 짓는 주춧돌 신세가 될 뻔 했는데 마을 어른들의 만류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귀퉁에서 쳐박혀 있다

 

 또 찾아낸 성혈

역시 천덕꾸러기처럼 쳐박혀 있다

 

성혈이 새겨진 바위는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마을 개조작업이 가장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 때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당산나무가 많이 사라진 것처럼....

 

 상곡사로 올라간다

한글 이름만 듣고는 절인 줄 알았다

 

상곡사 옆 추파 송기수선생의 묘역을 먼저 들러 보았다

 

좌측은 송기수 선생의 부친 묘

우측의 '유명조선'은 대체로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묘비의

관직과 성명 앞에 관용구처럼 따라붙는다고 한다.

 그 뜻은 “명나라에 있는 조선, 곧 명나라의 속국”으로 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숭명사상(崇明思想)이 강하였던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추파 송기수 묘 앞에 있는 대전에서 가장 큰 문인석

 

추파 선생은 16세기 조선조 사화시대의 유학자로 이황(李滉), 이준경(李浚慶) 등 조선시대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대사간, 도승지 등 육조판서를 지내며 4조(朝)를 섬기면서 부귀와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저서로 ≪楸坡集≫이 있다.

 

상곡사 내려가는 길이 내 눈을 잡는 것은

아직 성혈보다는 걷기에 관심이 더 가기 때문일 것이다

 

 

상곡사를 지나 행운의 돌 거북 공원으로 오른다

 

오늘 걷기에는 대전의 유명한 산꾼들이 함께 했다

깃발인 느낌표님은 두 말할 필요가 없고,

또 다른 한 분 뫼꿈이님은 산경표로 유명한 분이다.... 

 

산에 올라가는 데도 슬리퍼 차림이고.

 

시원하라고 옷을 벗고 물을 뿌리는....ㅋㅋㅋ

 

그 뫼꿈이님이 만난 기념으로 한가지 명언을 남긴다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것은 축복이라고....우박, 황사까지도 

 

그러면서 사람은 태어날때 숨을 내쉬며 태어나고,

죽을때 호흡을 들여 마시며 숨을 거두기에 호흡이라고 한다면서 얘기를 이어간다...

 

또 얘기를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개똥쑥이 뭐냐고 물어보는데.....바로 이 놈이다

 

돌 거북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돌 거북을 찾아보길

 

오늘 걷기는 깃발보다, 성혈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신 성혈 전문가보다,

보조 깃발이, 참가자가 더 얘기를 많이 하고 설명하는 정말 이색적인 걷기였다

 

 성혈, 일명 바위구멍....

돌까대장이 우리 몸의 구멍에 대해 얘기하면서 깨끗한 순으로...

열구멍, 숨구멍, 입구멍, 귀구멍, 눈구멍이라고 말하면서 듣지 말아야 할 더러운 것을 듣고 보는 것이 추악하다고....

 

한데 그 보다 열구멍을 끝까지 이해 못한 깃발 느낌표님의 순진무구가 모두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거북공원에서 잠깐 올라가니 폐고속도로이고, 터널이다

 

비래동 넘어오는 지름길 중 지름길이다


 

 콰이강의 다리

 

건축의 미가 전혀 없는 시멘트로 만들었는데도 장엄미가 느껴지는 것은.....

 

가양동 비래공원 앞 제법 이름난 보리밥집....

첨으로 묵밥을 먹어 보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남들 눈 보기엔 약간은 맛이 간 사람처럼

거리에서 길찾기를 하다가.....

 

쇠창살에 갇힌 가양동 두겁바위 성혈을 찾았다

 

성혈이 새겨진 바위가 살아남은 경위는 서두에서 얘기한 바와 같고,

다만 잘려나간 바위를 시멘트로 붙인 자국이 더 서글퍼진다....

 

위로들 드릴 겸

돌까 대장님이 손수 막걸리 한병 사와서 술을 붇는다

 

택시로 이동하여 마지막 성혈 장소 대동 하늘 공원에 올랐다

 

하늘 공원의 풍차

그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사랑은 위대하였다

 

우산 하나면 충분하였다...

그 무더운 더위도

 

낚서도

 

열쇠만으로도 불안해서....

 

연애바위에도 성혈 군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은폐물로 가려져 있지만,

찾고자 하는 열성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연애바위 이야기

 

 

그 바위 위에서 성혈을 이야기 하였다.

김씨네 우환이야기 봉자네 자식걱정, 이씨 어멈 몸져누운 이야기, 강가네 아들놈 연애 이야기 까지....

(느낌표님 블로그에서) 

 

몇년 전 딸네미와 찾아 왔던 그 곳에 오늘은 성혈이라는 놈을 보기 위해 왔다

 

그래도 성혈보다 벽화가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몇년 후 다시 왔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몇번 바뀌어 우리 딸 대학생이 되면 한번 더 와야지

 

오늘 도보,

아니 도보라기보다 탐사여행은 바로 요기서 끝났다...

 

오늘 걸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