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정신과 숨결이 곳곳에 깃든 선비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 서원 소수서원을 방문했다.
죽령 트레킹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들린 선비촌 저잣거리,
저잣거리 뒷편에 있는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일부러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발동하여 예정에 없이 들렸는데,
볼거리 뿐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번 들려도 좋을 그런 힐링을 주었다.
▲ 코스: 영주 선비촌과 소수서원 일원
▲ 거리/시간: 약 1시간 가량....
소수서원 앞 취한대
선비촌 주차장
선비촌 저잣거리 모습
우리는 저잣거리에 있는 종가집에서 소고기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저잣거리와 붙어 있는 선비촌에 들어갔다
우린 선비촌에서 소수서원 쪽으로,
통상의 역방향으로 걸었다
자기 띠를 찾아 한 컷
선비촌 내에는 다수의 체험 공간이 있다
어렷을 적 곧잘 얻어탔던 달구지
달구지를 타고 선비촌 한바퀴를 돌아보와도 좋을 듯
선비촌내 다양한 고택을 둘러보자
죽계교를 건너 소수서원으로 향한다
탁청지
소수서원으로 들어선다
사실 후문이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서원이다.
서원은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인 문성공 안향의 영정을 모신 사묘를 세우고 양반자제들의 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후에 명종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건의를 받아들여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토지와 노비를 주면서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내렸는데
이것이 사액서원의 시초가 되었다(소수서원 안내글에서, 이하 설명문 동일)
소수서원의 건물은 일반적인 서원 배치인 앞의 공부공간,
뒤의 제사공간 형태인 전당후묘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서원은 통상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림의 사상적 본거지이자 활동기반으로서
강학(講學)과 선현(先賢)의 제향(祭享) 두 기능을 담당했다.
관학이 중심이었던 조선초기의 교육제도는 중기를 지나면서 학교로서의 교육기능을 상실하게 되면서
학덕을 겸비한 유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서재(書齋), 정사(精舍) 등의 사학(私學)을 설립하여 학문을 보급하고 학문을 계승하였다.
서원은 도학을 이상으로 삼던 사대부 사림세력들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대표적 산물이다.
조선 성리학의 문화유산인 서원은 앞서 말한대로 선비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선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또한, 향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과 아울러 후에 지방사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견제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서원은 과거시험과 법령의 규제에 얽매인 관학과는 달리,
학문의 자율성이 존중되어 출세주의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아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유교적 인재 배출의 요람이었다.
이 곳에 사찰이었음을 반증하는 당간지주
취한대
자연을 벗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다.
옛시 '松翠寒溪'에서 따온 것으로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소수서원은
산책코스로도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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