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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걷기/옆지기와 떠난 길

곱게 늙은 절집 완주 화암사, 그리고 불명산 가는 길...옆지기와 함께 걷는 길(27)

by 강가딩 2014. 5. 26.


시인 안도현은 화암사를 빗대어 말하길

잘 늙은 절이라면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은 틀림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화암사 올라가는 길은,

비록 길지 않았지만

그동안 보고 접해 왔던 세상과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흡사 천국의 계단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묵직했고 강렬했다.

 

3시간여의 걷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화암사 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는 운주면에 들려,

이름도 생소한,

그러나 역시 맛은 진하고 오래 남은 물짜장을 먹었다.

 

코스: 주차장~화암사~불명산~임도~화암사~주차장

거리/시간: 4km, 3시간(천천히, 절 구경 포함)

언제, 누구와: 2014525(), 옆지기와 문경누님과 함께

 

 



곱게 늙은 절집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올라가는 길

 


대전에서 직선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대둔산 자락이 가로막아 에둘러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교통도 불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편함이 화암사를 곱게 늙도록 했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하이패스 전용의 양촌 톨게이트가 만들어져 화암사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일찍부터 갈려고 맘먹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졌다

 

골무풀

 

도로에서 벗어나 화암사 들어가는 길은,

교행이 힘들고 겨우 한 대 정도 갈 수 있는 매우 비좁은 길이다.

 

이처럼 꼭꼭 숨어 있지만

주차장에 도착해서 보니 예닐곱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나처럼 소문듣고 온 사람들일 것이다

 

여기는 여러 명 분잡하게 가는 길이 아니다.

해서 옆지기와 시간맞춰 갈려고 남겨두고 있었다

 

오늘은 옆지기가 좋아하는 문경누님이 함께 했다

내가 옆지기와 단 둘이 갈려다 찡겨준거야 했더니,

옆지기왈 문경언니는 가족이야한다.

...............

 

 

최근 들어 걷기 좋은 길들,

굳이 걷기 좋은 길을 고집하기 보다는 2, 3시간 정도 옆지기랑 와서 호젓하게 걷고 갈 길이 줄어들고 있다.

 

걷기꾼이 된지 5년이 지나다보니 제법 많은 곳을 다녀왔고,

그에 비례하여 남은 길이 줄어든 탓이다.

 

김연미가 쓴 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에서 소개한 걷기 코스 중,

가보지 않은 길 중에서 제 1순위로 올려놓고 재고 재고 쟀던 길,

 

그 책에서 화암사 가는 길은

고통에서 영혼이 병들고 있을 때찾아가는 길이라 했다

 

길은 짧지만 강렬하고,

고즈넉하면서 원시적인 작은 협곡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길,

그래서 고통받는 영혼이 꿈꿀수 있을 것 같은 길이라 적고 있다

 

올라가는 계곡에 벌써 때죽나무 꽃들이 여기저기 흩뿌러져 있었다

 

화암사를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른다

분명 여느 길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 느낌은 평범을 뛰어 넘는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10여분 걸었을까

환상에 젖어 있는 나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나타난다

폭포 옆으로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완주군수가 화암사에 왔다가 여기서 넘어져 다친 후

안전한 철계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뒤에 내려오면서 보니 철계단 뒤로 옛길이 나 있다

가보려다 포기했는데 바위 길로 되어 있어 비가 오면 위험할 듯 하다

 

  철계단 올라가는 길에,

 화암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음을 조금이라도 가시려는 의도였을까?

흙으로 빚은 예쁜 연화들이 요란하지 않게 치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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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장 끝에는 시인 안도현이 '화암사를 잘 늙은 절'이라 했다고 하는 글과

 

 

 '내 사랑 화암사'라는 시가 달려 나온다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 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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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도 화암사처럼 곱게 늙었다

아마 폭포를 보고 잘 늙었다고 말하면 혼날지 모르지만

느리게 느리게 물이 내려온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다

 

우화루가 눈에 들어온다

목조로 지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누각형 식을 취한 우화루.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전면 기둥들은 이층이며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후면은 축대를 쌓은 후 세운 공중누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화루 옆 절문을 지나면

적묵당과 우화루, 극락전, 불명당이 마당 한 켠을 각각 차지하는 사각형 절집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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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박하다

단청이 거의 없이 나무에는 세월의 때에 더덕더덕 붙어 있어 코흘리개 어린애가 보아도

나이가 먹은 절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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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때 지어진 절이라는 데 유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곱게, 잘 늙은 절로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으나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물이었다가 국보(국보 제 316)로 승격된 극락전은,

중국 남조시대에 유행하던 하앙식(下昻式) 건축물로 지어진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건축물이어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수 답사처라고 한다

 

하앙구조란 처마를 길게 늘이기 위한 건축기술 중 하나라고 한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문외한이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하앙식 건축물 구조의 실례가 많이 남아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현존 양식을 찾지 못하다가 1976년 학계에 처음 보고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이상, 퍼온 글)

 

 

갑자기 약한 소나기가 내렸다

보살님이 널어놓은 옷을 걷기 위해 후다닥 뛰어 오시다 우리와 마주쳤다

 

우화루와 극락전 사이에 있는 적묵당

보살님이 조용히만 있다 가면 된다면서 우리가 적묵당 마루에서 비를 피해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세상의 시름을 잊고 하늘을 천장 삼아 마루바닥에 드러누웠다.

 

뭐가 더 필요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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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자 우화루 옆 은행나무 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불명산으로 올랐다

 

생각해보니 불명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그냥 천천히 3시간 가량 산책하고 오면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왔기 때문이다

 

불명산 정상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거리는 짧지만,

그리고 산죽길이지만

여기가 바로 대둔산 건너편 자락임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대둔산은 바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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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소나기가 조금 내려 습기가 엄청났다

땀이 줄줄 쏟아졌고

급기야 문경 누님은 주저 않았다.

 

불명산 정상은 화암사처럼 매우 소박하다

 

능선길은 마사토가 많아 약간 미끄러웠다

미끄러움에는 옆지기가 쥐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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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 꽃이 벌써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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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화암사 방면으로 내려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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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만난다

화암사 스님들이 차량으로 다니는 길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배흘림 기둥,

저 우화루 대청마루에서 냇물소리를 음악삼아 바라보고 있으면 아마도 신선이 따로 없을 듯 했다

 

잘, 곱게 계속 늙길 바라면서 화암사를 내려온다

 

비가 올 때 다시 와보고 싶다

지금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움만 있는 곳은 아닐 듯 해서다

 

   

 

나오는 길에

운주면에 들려

이름도 생소한 물쟁반 짜장을 시켰다

 

일부러 들렸다

주인장은 20여년전에 개발했는데

최근 3~4년 전부터 이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외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특허를 내 두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우리나라에서 물짜장을 개발한 원조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매출의 50%가 요즘 여기서 나오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짜장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물짜장,

맛은 야끼 짬봉에 가까운데,

훨씬 부드럽고 맛깔스럽다

 

혹 이 근처를 지나갈 경우 한번 들려 맛볼 것을 강추한다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는 완주 화암사,

 

내가 알려주지 않는다고 오지 않을 것은 아니나

그래도....

여기서는 지도와 gpx 파일 등을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