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강경을 젓갈의 고장으로만 알고 있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전국 2대 포구(원산, 강경), 3대 시장(평양, 강경, 대구)으로,
일제시대에는 수탈의 기지로서 번창하였고,
그 근대문화의 흔적들이 지금도 곳곳에 숨쉬고 있는 근대문화역사의 보고이기도 하다.
강경에 자주 왔었고,
강경이 현대화의 물결에 비켜서 마치 우리 어렷을 적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지만,
막상 이렇게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걸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 언제, 누구와: 2012년 9월 16일(일), 인도행 대충방 행님들과 벙개도보로
우리는 강경상업정보고등학교에 차를 주차하고 근대문화유산 탐방 걷기에 나섰다.
정문 왼편으로 1931년에 건축된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강경읍 남교리 1·등록문화재 322호)가 있다.
그동안 강경상고 교장 관사로 쓰였으며,
일본 전통식 급경사 지붕에 우리나라 전통적 선의 멋을 가미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여기에도 가을이 왔다
한 시절 오랫동안 주름잡았던 강경상고 우리는 터치아트(출판사)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걷기사전'에 수록된
'곰삭은 젓갈냄새처럼 오래된 풍경, 강경'의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우리나라 스승의 날 발원지인 강경 여중고이며. 강경여중고 맞은편에 자리한 강경중앙초등학교의 강당 (강경읍 중앙리 155·등록문화재 60호)은 먼 발치에도 사진으로 담았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금방 일본풍임을 알 수 있었다. 등록문화재 10호로 지어진 옛 남일당 한약방
지상 2층 규모의 한식 목조 건물로 1923년에 건축됐고,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 전경사진속의 건물들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발원지 강경성결교회는 이전되어 가보지 못하였고, 그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만 보고 왔다.
김대건 신부가 유숙했던 곳 글라라님이 대표로 한 컷 찍었다.
200여년전에 지어진 전통적인 국궁 수련장 덕유정 덕유정 뒷뜰 고목나무에 핀 꽃무릇 옛 영화를 간직한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강경읍이 얼마나 번성했던 곳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건축물이다.
1905년에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르네상스 풍으로 지어졌고, 지금은 근대문화유산 역사관으로 개관되었다 강경이 60년대 세월에 멈춰있는 인상을 주는 증거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구 강경노동조합 (강경읍 염천리 20·등록문화재 323호)
서해에서 잡힌 수산물은 내륙항인 강경포구로 들어와서 전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1920년대 당시 강경노동조합의 규모와 세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강경 지역 근대 시기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경은 근대문화유산의 고장인 동시에 젓갈의 고장이기도 하다 더 볼 것이 많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여기서 종료하였다.
근대문화역사관에서 나눠준 강경 소개책자에 실린 강경 걷기 안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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