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적지 않은 곳을 갔다
걷기꾼보다는 산꾼이라 할 정도로 산행 비중이 높았던 해였다
아마도 한밭토요산악회 회장을 1년 맡아
코로나로 힘들긴 했지만
거의 매주 산행에 참석했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2021년 뽑은 트레킹코스는 개인적으로 갔던 곳이 더 많다
이는 걸음이 늦은 내가 유유자적,
내 시간에 맞춰 걷고 싶어서 찾아갔던 영향 탓이리라
난,
거칠고 험하고 힘들고 거리가 긴 길보다,
착하고 예쁘고 멋진 조망을 내주고 적당한 거리의 길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시, 꼭 하고 싶었던 대청호 피실 얼음 트레킹,
그 보다 더 하고 싶었던 것은 꽁꽁 얼은 대청호 위에서 라면 끓이는 것,
2021년 1월에 드뎌 해 보았다
1월, 증평 삼발랭산 삼보산 - 인삼고을 심마니길, 약 9km, 3시간(산행시간만)
집을 나설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함박눈을
걷다가 맞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왜나면 눈내리는 날에는 길이 조심스러워
멀리까지 차를 끌고 나서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우린 펑펑 쏟아지는 눈속에서 오뎅을 듬쁙 넣고 라면을 끓였다
삼보산 삼발랭산은 증평 둘레길의 1코스인 심마니길에 있다
2월, 청주 옥화구곡 관광길 - 달천따라 옥화 9경길, 약 15km, 약 5시간30분
1월말에 갔지만 2월에 가도 좋을 길이어서 선택했다
물론 2월에 간 운장산 서봉에서 본 눈덮인 비익조 능선도 좋았지만,
코로나 기간에 개통한 따근따근한 둘레길을 걸었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달천 속에 9개의 비경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치도 못했다
3월, 남양주 천마산 야생화 산행, 약 7km, 약 4시간 45분(꽃보다가 늦었다)
봄 야생화가 유난히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만주바람꽃을 처음 봤고
소문대로 노루귀와 꿩의바람꽃은 지천이었다
수도권 산은 교통정체 때문에 웬만해서는 차를 끌고 나서지 않는데
야생화의 유혹과 가보지 못한 100대 명산이어서 길을 나섰다
4월,
▲ 보성 일림산 철쭉 산행, 약 7.1km, 약 3시간 40분
▲ 진도 첨찰산 상록숲길, 약 6km, 약 3시간
왕눈이는 평생 이렇게 많은 철쭉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자랑하려고 보낸 카톡사진에
코끼리고문님은 청와대 정원을 독차지 했다고 응원해 주었다
난 진도 첨찰산도 좋았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상록의 동백숲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고 싶은 숲길임에 분명했다
산에서 만난 진도주민에게
정말 행복한 곳에 사셔서 좋겠다고 했더니 피식 웃기만 했다
파킨슨 어머니를 모시느라 고생하는옆지기를 위해
4박 5일 남도 여행을 떠났었다
5월,
▲ 황산벌 종주(3) - 황령재~천호산~천마산~양정고개, 약 10km, 약 4시간 20분
▲ 괴산 희양산에서 문경 봉암사로, 약 13.5km, 약 6시간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갈무리 해놓고 찾아가곤 한다
5월은 의미있는 두개의 길을 걸었다
대전/충청에 사는 걷기꾼으로서 백제의 흔적을 찾아 걸어보겠다고 생각해서
2019~20년 사이 공주 고마나루길(20km), 부여 사비길(15.5km), 익산 무왕길(약 23km),
그리고 서울 송파 한성백제 왕도길(약 13km)을 구석구석 빠트림없이 걸었다
황산벌길은,
660년 백제 견훤장군의 5천 군사가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사에 패한 역사적 장소를 걷는다
돈암서원에서 시작해 연산향교까지 44키로를 산길로 한바퀴 돈다
산꾼들은 한방에 끝내지만 난 세차례로 끊어 걸었다
어린이날 마지막 세번째를 걷고 마무리했다
또하나,
부처님 오신 날만 절문을 연다는 문경 봉암사를
괴산땅에서 희양산을 넘어서 꼭 가보고 싶었다
오랜 바램이 2021년에 이뤄졌다
문경 가은읍내에서 약돌돼지에 막걸리 한잔으로 그 기쁨을 만끽했다
6월 설악산 장수대~남교리 코스, 약 12km, 약 6시간 30분
설악에서 나혼자였다면 믿겠는가?
장수대에서 대승령 지나
십이선녀계곡이 시작되는 두문폭포 직전까지 나홀로였다
야생화와 늦은 봄꽃에 취했고
십이선녀탕에는 반해버렸다
7월,
▲ 지리산 연하선경을 걷다, 약 15.3km, 약 9시간 30분(총시간)
▲ 괴산 이만봉 솔나리 산행 - 흰솔나리를 만나다, 약 7.4km, 약 5시간 30분(산행시간)
煙霞仙境
그 이름에 걸맞게 구름속에 가린 연하선경을 걸었다
올해 유독 무더위에 숨가뿜이 심해서
세석까지만 올라가도 더 바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도와줘서 지리산 야생화들을 잔뜩 만나고 왔다
옆지기는 대학시절 함께 노고단에 오른 후
40여년 만에 지리산 능선을 같이 걸었다고 했다
하나 더,
1년을 기다렸다
지난해 블친 류님의 블로그에서 솔나리 정보를 접하고는 7월 둘째주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정성이 통했을까
막 절정을 지난 귀한 흰솔나리를 보여주었다
평생 보고도 남을 솔나리도 덤으로 보고 왔다
8월, 문경 둔덕산 마귀할멈 암릉, 약 11.8km, 약 8시간(산행시간은 6시간 30분)
비나문 수석산대장님이 6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8시간 넘게 걸렸다
서른 걸음 걷고 쉬고
쉰걸음 걷고 쉬기를 수십번
그럼에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던
마귀할멍 통시바위 암릉길을 걷고 왔다
무더위에서 견뎌낸 내가 자랑스런 날이었다
9월, 정읍 두승산, 황금벌판에 취하다, 약 6.5km, 약 3시간(산행시간)
가을을 상징하는 단어들
황금벌판, 사과밭, 억새, 단풍, 은행나무, 가을하늘, 자작나무 등
이제 체력이 떨어지는 날만 남은 나이,
기회를 만들고
시간을 내서
갈 수 있을 때 가을을 만나고 싶었다
두승산 정상을 지나 끝봉 정자에 서면
360도로 노랗게 익은 호남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두승산은 그냥 오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나흘 전 왔을 때는 비가 그치지 않아 곰소 소금길을 걷고 풀치백반을 먹고 왔었다
10월,
▲ 청송 신성계곡 녹색길 - 사과가 익는 계절에 가다, 약 11.5km, 약 4시간
▲ 동해 무릉계곡 베틀바위 산성길, 약 9.5km, 약 5시간
중간시험과 역량강화주간을 활용해
어머니를 네째 동생집으로 1주간 피난(?) 시키고 왕눈이랑 걷기를 떠났다
청송 1박 2일, 강릉 2박 3일
왕눈이는 빨갛게 익은 사과 과수원길을 걸었던 청송 신성계곡 녹색길이 최고였다고 했고,
난 최근 뜨는 핫한 곳, 무릉계곡 베틀바위 산성길에서 내려다 본 두타산 협곡 마천루가 좋았다
11월,
▲ 아산 물안/꾀꼴산성 둘레길과 현충사 은행나무길, 약 13.5km, 4시간 50분
▲ 김천 수도산과 치유의숲 자작나무길, 약 8.4km, 4시간 30분
가을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단지 그 이유로 마지막 남은 늦가을 흔적을 보러 갔다
은행나무와 자작나무 숲길을
이로써 올해는
억새(장수 장안산),
단풍(구미 금오산),
사과밭(청송 신성계곡 녹색길),
황금벌판(정읍 두승산)까지
내가 보고 싶었던 가을을 다 보고 올 수 있었다
김천 치유의 숲 자작나무길에서는
함께 한 심플님과 왕눈이가 올해 최고의 길이었다고 엄지척 했다
12월,
▲ 양주 불곡산과 불곡산 숲길 연계걷기, 약 9.3km, 4시간 30분(산행시간)
▲ 고창 운곡습지 생태탐방로 트레킹, 약 12km, 6시간
해를 넘기기 전에 가고 싶은 곳들이 적지 않지만
마냥 내 욕심만 부릴 수는 없다
한살이라도 어린 뚜버기 김박사가 운전대를 잡을 때
맘 편하게 다녀오자고 간 곳이다
욕심 안부린다면서 욕심을 내서 다녀온 곳이다
그래서였을까
고창 운곡습지에 갔을 때는 바램과 달리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컨디션이 엉망인 탓이었다
다음날 아침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함께 한 길벗들에게 내가 음성 나오기까지 맘을 조리게 했다
그렇게 2021년도 지나갔다
<사족>
걷기꾼인 내가 올해 한 일 중 가장 뜻깊은 것이,
바로 목원대 둘레길 조성에 힘을 보탠 것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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