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자주 하신 말씀 중 하나,
'저렇게 많은 여고생 중 내 딸은 한명도 없네'
아버님이 근무하셨던 곳은,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기 전 光州에서 여고로는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전남여고와 광주여고를 지나야 했다.
출근 길 쏟아지는 그 예쁜 강아지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소원은 더 간절해져 갔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버님이 근무했던 국세청도, 광주여고도 이사를 갔지만....
우리는 아들만 다섯인 육부자였다.
아버님의 소원은 매우 소박했다.
헛웃음을 나오게 하는 딸네미 애교를 한번만이라도 보는 것이었다.
네살 터울로 아들을 둘 낳고,
나도 고민을 했다.
아버님의 그 소원이 대를 이을 것인지,
아니면 깨트릴 것인지....
다행히 양념딸 세째가 태어났고,
벌써 고필이가 되었다.
제 엄마보다 키도 크고,
하는 짓이 애 같아서 그렇지 어엿한 숙녀다....
이 놈이 커가면서,
우리 아버지의 소원이 어느사인엔가 감염된 것인지,
소박함에 약간은 우쭐함이 더해진 두가지가 생겼다.
그 우쭐함은 아버지는 딸이 없었으나 난 그래도 있다는 것...
그 소원은 엄청난 것이 아니고 어찌보면 매우 시시한 것일 수 있다.
하나는 딸네미와 팔장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딸네미와 단 둘이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사정 사정 하면 마지 못해,
혹은 제 기분 좋으면 뽀뽀도 해주는 딸네미가
밖에만 나서면 아무리 사정을 해도 팔장을 끼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가 볼까 살짝 끼었다 푼다.
보는 눈이 창피하고 어색해서일 것이다.
근데 지난 달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교복차림으로 학교에서 오는 길에 팔장을 턱 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날은 별로 사정도 안했는데....
여튼 하나의 소원을 풀었다.
나의 동료인 이박사는 딸만 둘인데,
용돈 팍팍 올려주면 다 된다고 조언을 해준다.
근데 나의 경우는 별 도움이 안된다.
숫제 아쉬운 쪽이 바로 나고,
locus of control은 공듀에게 있기에.....
바로 어제 드뎌 두번째 소원도 풀었다
방학 자율학습도 끝나고 이번 주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 딸네미가
몇차례 애간장 태우면서 펑크를 냈던,
단 둘이서의 영화관 데이트를 허락했다.
기념으로 사진한장 찍자고 사정 사정 했는데,
그만하란다....(이제 더 하면 그냥 간다는 협박이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기념사진을 찍었다....
간절함은 소중할 때 나오고,
간절하게 바라면 이뤄진단다.
그 간절함과 소중함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이뤄졌다.
이뤄지고 나니 또 하나의 소원이 생긴다.
그것은,
우리 딸이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고,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우리 아빠가 나 어렸을 때 제일로 사랑해주고 예뻐해 주었다고 아들 딸 손자 손녀들에게 말하는 것...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이 보고 싶어지네.....
<바로 이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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